3월 20일 아침 9시 50분, 창원대 동력실 앞에는 아는 사람 하나없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리...
"어! 사람들이 모두 어디 갔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는 사람, 그사람은 이지언씨. 우리 둘은 서로의 사연을 이야기 하며 몹시 허탈 해 헀다. 이대로 집에 가기엔 주변 사람들에게 광고를 너무 많이 했고, 조교 선생님께 문의를 해 보기로 했다.
"지금 어디쯤 가고 있습니까?"
"소답동인데요."
돌아 와 달라, 애걸 복걸하고 싶었지만, 우리의 시간착오로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우리 둘은 마산 시외버스 정류장에서 남해가는 버스가 오전 11시에 있다는 소리를 114를 통해서 들었다. 둘의 눈빛은 반짝였고, 마산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지언씨가 차를 운전했다. 차는 유료주차장에 세워두고 거금 7.700원이라는 돈을 주고 남해행 11시 버스에 올랐다.
설렁한 버스안에서 용감한 두사람은 `남해 지족에는 잘 갈 수 있을까?`를 걱정했다. 그 때 지언씨 옆에 있는 아주머니께서,
"남해 지족갑니껴?"아니 이게 왠 행운의 여신...
"예. "
" 나도 거기 근처 이동면에 가는데..."
"어머, 그러세요!" 길 잃은 두 사람은 눈빛을 반짝였다.
"내 여동생이 거기 사는데..."하시며 휴대 전화를 거시는게 아닌가.
이리하여 우리는 남해까지 마음을 놓고, 행운의 여신과 담소를 나누며 지나가는 풍경에 마음을 빼앗길 수가 있었다.
마산에서 남해까지 1시간40분, 남해에서 지족까지 30분이 걸렸다.
지족행 시내버스를 타자 바다냄새가 느껴졌다. 처음 들어보는 곳 지족, 드디어 `지족 갯마을`이라는 표지를 보고 버스에서 내렸다.
"우리 도착 했거든요. 어디 계세요?"
"접수 받는데 있습니다."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고, 우리는 그저 접수받는 곳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점점 가까이 행사장에서 들려 오는 마이크 소리,우린 그 소리를 따라 걸었다. 아! 반가우신 모습, 교수님과 조교 선생님이 계셨다.
"밥 안 묵었지요?"하시며 교수님은 떡국을 먹을 수 있도록 도와 주셨다.
우리는 두 그릇의 떡국을 게눈 감추 듯 해치우고 어촌의 여인네 복장을 하고, 따뜻하게 익은 굴을 먹고, 드디어 향했다. 갯 뻘로...
우리가 도착 했을 땐 이미 많은 사람들의 호미질 소리가 경쾌하게 들려 왔다. 나와 지언씨도 그들과 함께 갯뻘에 있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호미질을 했다. 작은 조개가 나왔다. 작은 꽃게도 나왔다. 아이들에게 보여 주려고 꽃게 몇 마리를 잡았다. 조금 미안 했다. 너무 작았기에...
몇 분이 지났다. 팔이 아파 왔고, 호미질을 해도수확은 별로 없었다. 그러는 사이 바닷물은 점점 밀려 나갔고 갯뻘은 넓혀 져 갔다. 사람들은 바닷물이 지나간 자리로 이동하면서 열심히 호미질을 했다. 그들은 많은 수확을 거두었다. 그러나 나는 갯뻘을 빠져 나와 바다를 구경 했다. 지족 1리 마을 이장님이 방송기자와 인터뷰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자신의 마을을 관광상품으로 개발 하여 어촌을 살리기 위한 마음이 내 가슴에 와 다았다. 남해 군수님이 내 옆을 지나 가시며,
"와 안 캐고 있습니까?"
"..."
조금 미안 한 마음도 있었지만, 이리 구경 하는 것도 좋았다.
"와, 안캐고 있노?"
이 행사를 주관하는 지족 1리 주민이였다.
"바다에 있는 것 만으로 좋습니다."
아주머니는 내 파란 바게쓰와 호미를 들고 가시더니, 금세 하나 가득 우럭을 캐 오셨다. 나는 너무나 죄송스러웠다. 정말 큰 우럭이였다.
또, 마을에서는 주민 몇명을 갯뻘에 보내서 잘 캐지 못 하는 사람들에게 캐서 주라고 했다. 어른들의 마음씨에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 생각 났다.
오후 6시쯤, 우리는 일정을 모두 마치고 버스에 올랐다.
다들 피곤해 보였지만, 버스 짐칸에 있는 수확물에 대해 흐믓 해 하는 것 같았다.
지언씨와 내가 버스를 타고 지족 갯 마을에 간 이유는, 생전 처음 경험 할 수 있는 일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였다.
오늘도 지족 1리 주민들은, 어촌을 알리기 위해 마을 회관에서 보내고 있지 않을까...
나에게 큰 우럭을 케 주신 아주머니께 한 말씀 드리고 싶다.
" 아주머니, 우럭으로 맛있는 된장찌개 해 먹었습니다. 건강 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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